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잘못된 길 (문단 편집) === [[강간]]죄 피하기: "계약서라도 써야 하나요?" === 소단락 제목만 봐도 내용이 감이 잡히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대체 요즘 세상은 어째서 이렇게 깐깐해졌나'''에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서는 바로 그 지점을 설명하고자 시도한다. 간략한 질문으로 시작하자면, [[페미니즘]]은 정상인 남녀 간의 [[섹스]]에 대해서 어떤 공식입장(?)을 갖고 있을까? 이에 대한 간략한 대답은, "아직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는 것이다. 먼저, [[리버럴 페미니즘]] 및 [[래디컬 페미니즘]] 모두가 섹스에 대해서 "성적 유희의 기쁨" 을 탐험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전자의 경우 개인의 섹슈얼리티의 자유를 강조하고, 후자의 경우 성적 관습의 타파 및 다형도착(polymorphous perversity)을 강조한다. 하지만, 성부정적 페미니즘은 입장이 다르다. 이들은 '''"여성의 존엄성이 유린당하는" 피해 상황'''이라고 섹스를 바라본다. 섹슈얼리티의 소위 '해방' 이라는 것도 결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남성의 성적 광란"(p.141)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성부정적 페미니스트들이 물론 섹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보수적인 도덕주의에 입각한 것도 아니라고 해명하긴 하나, '''자칫 비현실적일 수 있는 성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즉 이들에 따르면, 일단 섹스를 해야만 한다면, 서로가 서로의 욕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서로가 하려는 모든 행위를 투명하게 사전 공개한 뒤, 그 모든 것에 전부 명시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Yes means No" 가능성에 입각하여, 상대방의 욕망에 한쪽이 양보하는 것은 동의가 아니라고 인식되어야 하며, 아주 작은 정신적이고 상황적인 압력이 가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관계는 실질적인 [[강간]]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양보하는 건 언제나 여성이다. 왜냐하면, 남성들의 성적 본능은 더 '충동적' 이고 '즉흥적' 이며 '단순' 하기 때문에 (즉 더욱 '강간스러운' 섹스를 추구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성적 환상에 부합하지 않는 극단적인 무언가를 요구하기 십상일 테니까.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불만을 표한다. '''"아니, 하나하나 그런 식으로 하면 그게 [[섹스]]임?"''' 저자의 지적을 이해하기 위한 첫 단추는 우선 이렇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남성이 "[[라면 먹고 갈래?]]" 를 은근슬쩍 제안했을 때, (그나마 이런 언어적 제안조차 필수적이지 않다는 점은 접어두자) 여성이 "음... 좋아" 라고 대답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아직 남성들은 환호성을 지르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긍정적 대답이 "[[나는 그것만을 위해 존재합니다|Yes means yes]]" 인지, 아니면 내키지는 않지만 원한다면 "Yes means no" 수준의 양보를 해 주는 것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전자가 확실하다면 그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후자일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다음날 여성의 신고로 인해서 자신이 [[강간죄]]로 [[경찰서 정모]]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적으로나 비언어적으로나, 이를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존엄한 인간을 대한다고 생각해라", "여성을 물건 취급하지만 않으면 된다", "이걸 어려워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남성들이 얼마나 강간에 익숙한 마인드인지를 보여준다" 는 식으로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남성들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문자 그대로 '시커먼 남자들' 대하듯이 여성을 대한다고 해서, 그 여성이 자신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거라는 보장이 여전히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전히 서로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섹스의 기준이 불일치할 가능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성 본인도 (당연하게도) 스스로의 의향에 확실치 않을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이지만, 유독 그 주제가 [[섹스]]일 경우에는 남성이 경찰서에 끌려가느냐 아니냐의 운명이 갈린다. 이런 어려움을 느낀 남성들은 마침내 "무슨 [[변호사]]라도 끼고 합의서나 계약서라도 받으라는 말이냐" 고 불평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흔히 이런 불평을 비웃기도 하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실제로 90년대 초에 미국의 안티오크 대학에서 철학자 로이스 피노(L.Pineau)를 중심으로 이런 주장이 진지하게 제기되었던 적이 있다]]는 걸 인지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발상이 섹스에 대한 비현실적인 관념에 기초한다고 비판한다. 현실에서 두 사람의 성욕이 그렇게 완벽하게 박자를 맞추어 '''동시에''' 생겨나고, '''동시에''' 무르익고,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섹스에는 얼마든지 "무언의 놀이, 남을 놀라게 하는 놀이, 감추는 놀이, 뭔가를 시도해 보려는 놀이"(p.155)가 포함될 수 있다. 설령 처음에는 원치 않았더라도 한쪽의 간청으로 이내 진전되기도 한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심지어 양쪽 모두 생각이 없었다가 돌발적으로 시작될 수도 있다. 친구처럼 지내는 남녀가 퍼질러 앉아서 맥주 마시고 오징어 다리를 뜯다가 갑자기 달아올라서 관계를 갖게 되고, 그 이후로도 계속 친구처럼 지내는 상황도 이 복잡한 인간사 속에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섹스가 갖는 [[에로티시즘]]이다. 하지만 성부정론 페미니스트들은 '''에로티시즘을 부정한다.''' 이들의 눈에는, 그런 '서프라이즈 파티' 는 여성에 대한 [[강간]]일 뿐이다. 여성을 놀라게 한 남성을 기다리는 건 형사처벌이어야 한다. 여성은 섹스에 임하기 전에 자신이 앞으로 관여하게 될 모든 행위의 세부사항에 대해 인지하고 동의할 법적 권리가 있다... 의 논리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이 결국 섹스의 상상력과 즉흥성을 소독시켜 버리는 "에로티시즘의 종말"(p.154)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일체의 수줍음이나 양보, 튕김 등이 섞여들지 않은, 정말 남녀 모두가 전적으로 수용한, 완벽하게 투명한 성적 접촉을 인식하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이상적' 인 섹스가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섹스 계약은 '''[[성매매|매춘 행위에 대한 계약]]뿐이다.'''"(p.156) 하지만 이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니, 오히려 성부정론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에 대한 가장 완고한 비판론자들이기도 하다. 물론 성노동자들이 '노동자' 냐 아니면 '[[성노예]]' 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겠지만, 어쨌거나 이들이 임하는 섹스라면 (적어도 위의 논리대로라면) 진정한 [[사랑]]의 결실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성부정론 페미니스트들이 [[성매매|돈으로 여성의 성을 구매했으니]] 이 또한 진정한 의미의 섹스가 아니라고 (즉 강간이라고) 대답하는 것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남창|여성이 남성에게 돈을 주고 성적인 서비스를 받았다면]] 그 남성은 강간당한 것인가? 돈이 오가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수저계급론|사회경제적 지위만 보고]] 배우자를 고르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럼 이들도 잘못된 것인가? 2002년의 프랑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96%의 프랑스인들은 연애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라고 응답했는데, 이들이 타락한 것인가, 아니면 페미니스트들이 순진한 것인가? 저자는 이처럼 '''성부정론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하는 섹스의 허들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높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들이 "남성들의 성욕은 본능 수준에서 폭력적이고, 여성들의 성욕은 본능 수준에서 비폭력적이다" 라고 인식한다는 데서 찾고 있다. 결국, 남성을 타고난 가해자로, 여성을 타고난 피해자로 전제하는 이상, 이 둘이 만나는 [[섹스]]에 대한 인식은 정해진 셈이다. [[섹스]]를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관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남성|잠재적인 가해자]]가 본질적으로 [[여성|순진무구한 피해자]]를 꼬셔다가 [[모텔|남모르는 곳]]으로 납치하고는 [[누드|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심지어 [[음경|자신이 준비한 흉기]]를 피해자의 몸에 들이대면서도 "[[오빠 믿지]]?" 를 속삭이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위기일발의 위험을 여성 쪽이 굳이 무릅써야만 하겠다면, 그런 짐승과도 같은 남성의 성욕을 철저히 묶어놓아야만 한다.[* 저자는 남성들이 침대 위에서 야수가 되는 경향을 체계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온갖 방법들을 모색하다가 이상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고 말하며, 그 즈음하여 있었던 사례를 소개한다. 90년대 말,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지역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소년들에게 소녀처럼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남성이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은 마초적인 섹스의 암시를 주는 제스처라고 주장했으며, 이런 것부터 고쳐나가야 남성들이 자기 성욕을 억누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논리에 대해 남성들은 불쾌했지만, 차마 그것에 반대하지는 못했다고. 물론 이와는 무관하게, 서구의 건식화장실에서는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이 위생에 매우 좋지 않긴 하다.] 그러려면 이 여성이 겪게 될 모든 것들을 사전에 정해 놓아야 하는 것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순간 그 '야수' 는 격리 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에 대해 저자는 굉장히 비관한다. 성부정론 페미니스트들의 목표는 단순히 남성들의 [[성범죄]]를 억제한다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지나치며, "[[남성혐오|이 세상 대부분의 남성을 비판하는 것처럼]]"(p.162)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최초의 질문, 어째서 성부정적 페미니스트들은 그렇게나 깐깐하게 섹스가 강간일지 아닐지를 따지는지로 돌아와 보자. 그 이유는, '''이들이 섹스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째서 섹스에 대해 그런 비현실적인 기준을 갖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이들이 남성과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 자체가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생물학적으로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든지 "욕정에 미친 짐승"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믿는다면, [[섹스|그런 짐승에게 인간이 가장 취약해지는 시점]]에서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짐승이 욕정에 못 이겨 그 '이빨' 을 드러내는 듯해 보이면 [[강간죄|그 짐승을 처벌해야만 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녀를 사회적 구성으로서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조건으로 이해한 결과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